내 전공 분야다. 국내에서는 '근세'가 더 통용되는 모양이다.

일단 유럽 전근대사, 즉 Early Modern History가 뭐냐 하니, 이게 사실 학계 내에서도 굉장히 최근에 정립 되고 통용 되기 시작한 시대 구분이라 그 정의가 사실 좀 들쭉 날쭉 하다.
귀찮으니깐 다 집어 치우고, 일단 나의 (그리고 학계에서 통용 되는) 관점은 15세기 중반, 즉 후기 르네상스 부터 18세기 후반, 범대서양 혁명의 시대 까지를 근세라고 본다.
예리한 독자들은 이 전근대, 혹은 근세라는 단어 자체가 중세와 근대 사이의 과도기적 성격을 내포한다는 걸 알아 챘을 것이다.
일단 학계에서 이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기록은 1869년 William Johnson이라는 진짜 몰개성한 이름의 어떤 경제사학자가 처음 사용한 모양이다. 이름도 좀 시발 실재로 누구였는지 좀 찾아 볼 수 있게 지을 것이지...
근데 사실 19세기 후반 자체가 역사학계에서 전근대의 시발점, 즉 르네상스의 정의와 성격 가지고 아가리 파이팅 하느라 바빴던 시절이라, 근세라는 개념은 20세기 초반 까지 버려져서 학술적 개념으로서 그다지 발전이 없었다.
풀어 말하자면 빤쓰를 하나 만들려면 고무줄이 있어야 되는데 20세기 초반 까지는 고무줄 만드느라 바빴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다가 르네상스가 중세로 부터 독립적인시대 구분으로 인정 받을 만한 확연한 발전들이 있었다는게 어느 정도 인정 받고 난 이후, 즉 부르크하르트 테제가 확고해 지고 기존의 문화-지식사적 초점을 벗어나 사회, 경제, 정치, 전반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역사학자들은 비로서 중세와 근대 사이에 있는 '전근대', 혹은 '근세'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념적인 측면에서 지반 공사가 어느 정도 되자 20세기 전간기의 영국 경제 사학자들이 주춧돌을 새우기 시작했다. 이 시대 자체가 유럽 전역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렬해지고, 마르크스 사상이 비단 이념이 아니라 하나의 학문적 전통으로 성장 하면서 빨갱이 역사 경제학이 흥했는데, 근세 또한 이 과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빨갱이 경제사학자들 중에서 R.H. Tawney라는 인상 좋고 머리 안 벗겨진 레닌 처럼 생긴 양반이 16세기 인클로져 운동과 영국 종교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시대의 경제사를 파고 들며 소위 말하는 '젠트리의 상승' 이론을 새우면서 16세기와 그 이전 시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윤곽이 어느 정도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본인이 직접 'early modern'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은 없다). 그리고 1940년대에 토니의 제자들인 John Nef와 F.L. Nussbaum이 정식으로 이 단어와 개념을 학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독교 빨갱이였다. 인상과 인품을 조합해 생각해 보면 아마 20세기 사학계에 강림했던 예수님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40년대면 사실 인문학 전반의 기본적인 학문적 틀은 어느 정도 성립 될 만큼 성립 되었던 시대다. 르네상스와 계몽 시대야 페트라르카, 볼테르 같은 양반들이 상당히 작위적으로 학문적인 개념을 툭 만들어 내는게 통했지만, 학문의 전문성이 심화 될 수록 그런 식의 쿨가이 떡밥 투척은 통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시대 구분이 그렇듯이, 근세 또한 하나의 교수법적인 개념으로, 즉 실증적인 사실이 아니라 학문적 편의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보아야 하는데, 이게 학계 내에서 뿌리가 깊지 않으니 여전히 좀 허술한 면이 많다. 특히 젠트리의 부상 이론, 마르크스적 역사 사회학 같은게 까 뒤집히고 학계 내에서 "12세기나 17세기나 사실 인구 대부분이 먹고 사는 방식은 크게 달라 진거 없었음ㅋ"로 결론이 나 버려서 아이러니컬 하게도 근세 개념을 탄생 시킨 좌파 경제학자들이 이제 이 개념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마당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이 시대를 그냥 '근대'라 부르고, 근세 개념을 가장 활발하게 적용한 영미 사학계에서도 70년대는 되야 이게 어느 정도 독립성을 인정 받기 시작했다.
어쨋든 지금 21세기에 와서는 우여 곡절 끝에 서양 역사학 내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세부 분야로 입지가 확고 해 졌다. 그래픽만 쓸데 없이 좋은 게임들 하고 여성용 속옷 모델 좋아하는 모 유명 블로거가 연재 중인 영국 내전을 둘러 싼 60, 70년대 영국 사학계를 풍미했던 젠트리 논쟁, 아날 학파의 학문적 기여, 유물론적 사관의 쇠퇴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엘리트 역사'의 재부상 등을 통해서 전근대사는 하나의 구체적인 담론으로 굳어졌고, 그 유효성이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대 구분이란 행위 자체의 허구성이야 포스트모던 후로게이 해체 매니아들이나 실컷 물고 놀면 될 노릇이고, 반드시 대중적 일상의 발전만 유효한 역사적 발전의 구분점이라는 유물론적 강박증만 던져 버리면 16, 17, 18세기에 걸쳐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 걸쳐 이전 시대와 확고하게 다르며 후대 역사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사적 발전들이 생겨 났다는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요즘 많이 떠들어 대는 세계화 문제만 봐도, 실제로 동서양이 실크로드 통해서 상품이나 찔끔 찔끔 주고 받던 걸 넘어 정치-경제적인 개체 대 개체로서 교류하기 시작한 것도 대항해 시대잖아. 시대적 혁신이 역사적 연속성과 상호 배제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만 염두에 두면 근세 담론 자체의 유효성은 확고하다고 본다. 안그러면 내 미래 밥줄이 없어지잖아 시발들아. 다만 동양에서야 이 시대에 한 개체 안에서의 내부적 변화가 적어도 유럽 만큼 두드러진건 아니라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야 이게 좀 희미하게 느껴 질 수도 있겠다.
어쨋든 역사학적 개념으로서의 짦은 역사를 반영하듯, 일반 양민들도 막상 근세에 일어난 사건들 자체는 알고 있으면서도 근세란 개념 자체는 모를 때가 많다. 르네상스, 신대륙 정복, 인쇄술 발명, 종교 개혁, 종교 전쟁, 과학혁명, 물가 혁명, 계몽주의, 이런건 뭔지 다 아는데 막상 이들을 포괄하는 '근세'라는 개념 자체는 아직 낮설다는 거다. 그래, 그래, 정리하자면 저게 다 근세에 일어난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학자들은 저 일들이 일어난 시대를 통틀어 근세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초점을 프랑스 혁명에 두고 '앙시엥 레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단 앙시엥 레짐 자체가 굉장히 엿가락 같은 개념이고 (같은 군주제 국가라 한들 동시대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의 통치 체제와 문화는 굉장히 차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앙시엥 레짐 자체가 근세의 부산물이지, 근세 자체가 앙시엥 레짐에 부합하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건 기각.
어쨋든 이 시대에 대한 개념적인 설명은 이 정도 해 두고, 시대 자체를 어느 정도 묘사해 보자면, 역시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 만큼 확실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에 관련해 17세기의 잉글랜드 국교회 목사였던 롤프 조셀린은 자기가 사는 세상을 돌아 보고 1640년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볼 때 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끝 없는 혼란, 혼돈 뿐이구나."
삼년 뒤 최근 실각한 스페인의 재상, 올리바레스 백공伯公의 측근 하나는 또 Nicandro라는 제목의 정치서 서두에 이러한 멘트를 남겼다.
"북방은 모두 격동에 휩싸였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모두 내전으로 찢겨지고 있고, 스웨덴과 덴마크에는 다시 전운이 감돈다... 에티오피아가 터키인들에게 침략 당했고... 중국은 타타르족에게 (역주: 당시 유럽에서는 몽골계 기마 민족을 다 타타르라 불렀다) 정복 당했으며... 갠지스 강과 인더스 강 사이의 인도의 군주들 또한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백년이 지난 이후 위대한 볼테르는 그의 역사서 "국가들의 풍습과 정신에 관한 수필" (1756)에서 이 시대를 일컬어 '범汎적인 위기의 시대 (age of 'general crisis') 라고 불렀다.
야이 시발 학원 갔다가 제사 가야 된다 갔다 와서도 확실하게 마저 쓰게 일부로 덜 쓴거 올리고 간다. 이거 마저 안쓰면 나 존나 욕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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